강신주의 감정수업, 책의 거의 맨 뒷장을 보시면 윌리엄 블레이크 시인의 순수의 전조라는 시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는 이것을 제대로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섬세하게 직조된 기쁨과 슬픔은
신성한 영혼을 위한 안성맞춤의 옷.
모든 비탄과 갈망 아래로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이번 주 바스락 모임에서는 <강신주의 감정수업>이라는 책으로 독서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주 유명해진 철학자, 강신주가 읽어주는 욕망의 인문학이라는 부제로 쓰여진 이 책. 사실 저는 한 3년 전에 처음 발간됐을 때 이 책을 만났습니다. 그 전부터 강신주를 좋아하는 탓에, 그의 신간은 늘 제 구매 리스트에 들어가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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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전에 쓴 글만 보더라도 그에 관한 글이 정말 많죠. 이 글도 일부일 뿐, 제 블로그를 돌아보시다보면 정말 많습니다.
1967년생,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강신주는 연세대학교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대학원부터 철학으로 변경하였습니다. 86학번인 그는 민주화 운동의 세대이기도 하죠. 시위와 데모를 많이 하기도 했고, 사회적인 분위기에 매료된 그는 그때부터 열심히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정치, 사회 서적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때의 그 경험이 현재 강신주를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죠. 그는 어느 누구나처럼 처음에는 그렇게 두각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SERI(삼성경제연구소)에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추천도서로 선정하고 그가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 책은 그 해에만 인문학 서적으로는 상상하지도 못할 5만권을 판매하게 됩니다. 그 이후, 그가 전에 썼던 철학과 시를 결합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상처받지 않을 권리> 등이 덩달아 판매 부수가 올라갑니다.
철학, 인문학이라는 분야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엔 굉장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쩔 때 보면 그들만의 리그 같기도 해요. 그런데 강신주는 다 상담해주겠다. 라는 마인드로 벙커원에서 다상담을 개최하면서 대중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합니다. 철학자가 상담을 해준다니까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긴 하는데 처음부터 이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요?
어디서 들어본 유명한 사람이긴한데 못 미더운 거죠. 그렇게 1년간은 그의 자질을 테스트하려는 질문이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강신주도 그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그 때 '날 뭘로보고 이 사람들이 나를 떠보는 건가. 못해먹겠다' 했으면 지금의 강신주는 없었을 겁니다. 1년은 그냥 묵묵히 그 사람들의 고민이 진짜든 가짜든 들어주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진짜 고민을 들고 오더랍니다. 그때부터 강신주의 직설적인 화법이 힘을 발휘한 거죠. 보통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은 자신이 선택한 쪽에 상대방 또는 멘토가 힘을 실어주길 바랄 뿐이죠.
강신주는 그들이 갖고있는 비겁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태생적인 찌질함을 가지고 있죠. 그 찌질함을 직면해야만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데 우리는 보통 비겁하기 때문에 직면하지 않고 쉬운 길만 택하려는 성향이 있죠.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비겁함의 두께가 점점 두꺼워지는 만큼 그의 어조도 강해집니다. 그렇게 수 년간 지속된 다상담을 통해 그는 "거리의 철학자"라는 칭호를 얻으면서 대중들과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그 이후에는 SBS 힐링캠프에도 출연했지만, 글쎄요. 저도 포스팅을 하긴 했지만 사실 나가지 않는 편이 그의 이미지에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같은 경우 한 해동안 28만권이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아까 말한 <철학이 필요한 시간> 5만권도 인문서적으로는 정말 엄청난 건데, 28만권. 어마어마한거죠. 그만큼 그가 강연,방송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유명세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죠. 어쨌든 그 모습을 지켜 본 강신주는 "이렇게 많이 팔릴 책이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죠. (속으론 좋으면서. ㅋㅋㅋㅋㅋ)
감정, Emotion.
이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게 요즘 쓰는 '이모티콘'이죠.
Emotion + Icon의 합성어이기도 하구요.
우리 사회에서 감정은 널리 통용되지 않습니다. 매 순간순간마다 감정을 표출하면 약한 사람, 의지가 없는 사람, 무책임한 사람으로 평가받죠.
너, 나한테 감정 있냐?
감정적으로 굴지 마.
감정에 호소하지마.
감정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이렇게 부정적으로 쓰이는 편입니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꼴이 되버리니 우리 사회에서 감정 표현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요즘 세대에 이모티콘 사용이 유행인 것도 이런 현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일이 나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모티콘 하나만 보내면 표현이 되니깐요.
우리는 언제 사진을 찍게 될까요?
감정수업, 머리말에 나온 질문이기도 하죠.
앞에 놓인 풍경 또는 사람이 우리에게 기쁨 또는 설렘의 감정을 선사해줬을 때 우리는 사진을 찍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번, 수 만번 이상의 사람들과 사물들이 우리의 눈에 비춰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무의미하게 흘러갈 뿐이죠. 그런 무의미한 것 중에 우리의 감정이 들어간 것, 즉 기쁨과 설렘을 느낀 상대를 만난다면 단순히 흘러가지 않고 우리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면서 의미있는 것들로 변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셔터를 누르게 되는 거죠.
행복했거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이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진속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잘 설명하고 있죠. 아이들은 일희일비. 어떤 풍경이나 사람을 보면 그때 바로 반응을 하죠. 그 모습은 마치 호수를 뛰어오르는 숭어처럼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죠. 그 일이 행복했든, 불행했든 말이죠.
(오히려 작년, 재작년의 일들이 더 기억이 안날 때가 있죠. )
어른이 된다는 건, 다른 말로 감정을 억압할 줄 알아야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처럼 매사에 일희일비한다면 사회 또는 가정 생활에서 굉장히 피곤해지죠. 위에서 말했듯 그래서 우리는 어른이 된 다음부터는 별로 기억나는 추억이 없는 거 같습니다.
감정 수업에서는 이렇게 48가지의 감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최상단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죠.
그리고 그 48가지의 감정은 총 4개의 챕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땅의 속삭임, 물의 노래, 불꽃처럼, 바람의 흔적.
그리고 각각 감정(소설)에 대한 설명, 작가 설명, 강신주라는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로 구성되어 있죠.
특히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는 이 감정수업의 실전편이자 응용편이기도 합니다.
땅의 속삭임, 작고 귀여운 그리고 기초적인 감정들은 대지에 피는 새싹과도 같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봄의 따뜻한 기운을 받고 녹으면서 그 안에 피어나는 새싹처럼 작지만 강인한 기초적인 감정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연봉이 3천만원인 사람이 5천만원으로 오르기를 원한다.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탐욕이라는 감정이 대답합니다. 책에서는 사랑마저 집어 삼키는 괴물이라고 정의가 되어 있죠. 소설은 위대한 개츠비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난한 장교 출신인 개츠비는 톰과의 인연으로 우연히 상류층 파티에 참여하게 됩니다. 거기서 상류층 여자인 데이지를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되죠.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너무 형편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5년 뒤 개츠비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쌓고 데이지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데이지 또한 그런 개츠비를 보면서 심하게 흔들리죠. 왜냐? 톰보다 부자니까. 데이지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돈 앞에서 마구 흔들리는. 그런 데이지를 보며 남편이자 바람둥이 톰은 그녀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개츠비의 재산 형성과정이 불법적이었다는 걸 폭로합니다. 데이지는 그 폭로에 너무 쉽게 흔들리죠. 어차피 톰도 충분히 부자니깐요.
이 세 사람은 언뜻 보면 사랑의 삼각관계인 거 같지만 자세히 보면 탐욕의 삼각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츠비는 데이지라는 여자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의 공허함을 상류층 여자를 만남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 거 같은 판타지. 즉 신분 상승에 탐욕이 있었죠. 데이지, 그녀 자체만으로 사랑하기보다 상류층 여자인 데이지를 사랑하는 거죠.
결국 개츠비의 사랑도 탐욕에서 출발했던 셈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개츠비, 데이지, 그리고 톰을
가로지르고 있는 '탐욕' 그 자체가 아닐까.
마실수록 더 마시게 되는,
밑도 끝도 없이 치명적으로 중독적인 욕망이
바로 갈애이자 탐욕인 셈이다.
이 말이 앞서 말한 연봉에 관한 질문에 답변이 될 수 있습니다.
연봉 3천만원인 사람이 5천만원이 되면? 그 다음은 1억이죠.
1억을 받으면 끝이냐? 아니죠. 2억. 3억. 10억.
결국 그 목표를 달성하면 그 다음 목표를 향해 밑도 끝도 없이 갈구하게 되죠.
탐욕이라는 감정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죽음 이외엔 끝이 없으니깐요.
물의 노래
변덕스럽지만 때로는 격정적이기도
감정들은 굴곡과 고도차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소리를 만드는 시냇물과 닮았다.
평소에는 졸졸졸 흐르다가, 어느 순간 급속도로 빨라지는 시냇물처럼 갑작스럽게 변하는 감정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소했던 말 또는 행동 하나가 상대에게 절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절망이라는 감정은 영화로도 유명한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소설이 등장합니다. 타이타닉으로 유명한 케이트 윈슬렛이 극중 '한나'역을 맡아서 유명하기도 하죠. 고등학생인 '마이클'은 학교를 가다가 갑자기 어지럼증을 호소하면서 거리에서 구토를 하며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그 때 20살 연상의 한나가 등장해서 그를 집에 데려가서 간호해주죠.
그러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둘은 같이 샤워도 하고, 사랑의 감정도 나누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나가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죠. 그렇게 계속 지내다 어느 날 한나가 사라집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법대로 진학한 미하엘은 우연히 참석한 재판장에서 피고인으로 서있는 한나를 목격하게 됩니다. 거기서 한나는 나치를 도와준 정황이 보이는 보고서를 썼다는 누명을 쓰고 있었죠. 하지만 문맹인 그녀가 그 보고서를 썼을리 없죠. 하지만 '문맹'은 그녀의 역린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싫은 치부였죠. 그래서 그녀는 그냥 자신이 보고서를 썼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투옥됩니다. 마이클은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지만, 선뜻 말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녀의 역린을 지켜주고 싶어서 그냥 묵묵히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나는 한줄기 빛도 없는 쓸쓸한 감옥살이를 하다가, 어느 날 마이클이 보낸 카세트 테이프를 받게 됩니다. 그 테이프에는 어렸을 때 그가 바로 옆에서 책을 읽어줬던 것처럼 책을 일일이 녹음해서 보내준 거였습니다. 그녀는 거기서 한 줄기의 빛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우울했던 그녀는 많이 밝아지게 됩니다. 그 영향으로 감옥에서 열심히 글도 깨우쳐서 마이클에게 감사의 편지도 보내게 되죠. 그런데 그는 그 편지를 무시한 채 전처럼 계속해서 카세트 테이프만 보내줍니다.
시간이 흘러, 한나의 출소일이 다가오고 가족도 친구도 없는 그녀를 출소 후 유일하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이클 뿐이었습니다. 그때 몇 십년만에 그 둘이 조우하게 되죠. 그때 한나는 둘이 교감을 나눴던 행복한 시간만을 기억하고 있는 반면, 마이클은 전혀 달랐습니다. 냉소하게 그녀를 도와줄 뿐이었죠.
출소 후 그녀는 책을 쌓아놓고 그 위로 올라가 목을 매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만약 일말의 희망도 없었다면 그녀는 자살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이클이 심어준 희망이 있었기에 절망의 감정은 더욱 큰 법이었죠. 소설이 끝날 때까지 마이클은 한나가 왜 죽었는지 이유조차 모릅니다. 바로 자신때문인데 말이죠.
그가 편지를 쓰지 않은 이유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기에 그는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기 싫었던 겁니다. 자신의 그런 역할을 잃지 않기 위해 현재의 한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거죠.
어쩌면 마이클 입장에서는 배려라고 했던 그 사소한 이 행동 하나가 그녀를 파멸로 이끌어버렸습니다. 우리라고 다를까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말, 또는 행동 하나가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불꽃처럼.
화려하지만 곧 쇠락하기 쉬운감정들은
모닥불의 가녀한 떨림들을 연상시킨다.
화려하지만, 외부 영향으로 인해 언제 꺼질지 모르는 모닥불처럼 아슬아슬한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공손은 좋은 감정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35번 감정, 공손이 대답해줍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 아버지라는 타자로부터 분노를 피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극 중 요조라는 인물은 다자이 오사무 작가의 어린시절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조의 시선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무섭기만 합니다. 어느 날 도쿄로 출장을 가기로한 아버지가 요조에게 어떤 선물을 갖고 싶느냐?라고 물어봅니다. 보통의 아이라면 자신이 갖고 싶은 선물을 거침없이 이야기 했을테지만 요조는 무서운 아버지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보다 아버지의 욕망을 읽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야 아버지가 화낼 수 있는 확률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 주변에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공부를 하고 있고,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죠. 물론 이 행동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본인의 욕망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죠.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캉의 말처럼 그런 아이들은 부모님의 욕망만 욕망하게 됩니다. 100점을 받더라도 '내가 열심히 했구나!'라고 생각하기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시겠다!'라는 감정이 앞서는 거죠. 얼마나 슬픈 얘깁니까.
한 번 그렇게 욕망한 아이들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욕망하는 법을 알아야 좋아하는 것을 찾아갈텐데, 그렇게 해본 적이 없기에 감조차도 안 잡히는 거죠. 그래서 아이가 공손하거나, 겸손하다는 말은 자신의 감정을 억압할 줄 아는 아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절대 좋은 게 아니죠. 감정을 억압하지 말아야 할 나이에 그런 행동을 취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 제목을 이런 모습을 두고 한없이 비루한 자신은 인간으로서 실격이다. 즉 인간 실격으로 소설 제목을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04. 바람의 흔적
차갑고 허하로운 감정들은 들리지 않는
차가운 바람소리를 연상시킨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감이 만들어낸 비극.
누군가 당신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100% 당신이 소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프랑스에서 관용어구로 쓰인다고도 합니다.
프랑수아 사강이라는 작가는 프랑스에서 인정받는 베스트셀러였죠. 18세 때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을 쓰고 엄청난 부와 인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마세라티, 부가티와 같은 고급 차를 모으는게 취미였다고 하죠. 그 이후 22세 때 바로 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작품을 쓰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엄청난 심안이 있었던 거죠.
사실 여기서 나오는 브람스 또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동료인 (작곡가) 슈만의 부인인 클라라를 좋아했습니다. 친구의 부인이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가 어느날 슈만이 죽습니다. 브람스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죠. 클라라를 쟁취할 수 있는.
하지만 소심한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고백조차 못합니다. 나중에 가서 안 이야기지만 클라라 또한 브람스를 좋아했었습니다. 브람스가 조금만 용기를 냈더라면 그렇게 좋아했던 클라라와 사랑의 감정을 나눌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이런 모습은 그의 곡에서도 느껴집니다. 웅장한 거 같으면서도 그 내부로 들어가면 소심함이 느껴집니다.
소설 속 '폴'이라는 여인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자신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젊은 청년 사이에 한없이 고민하다가 소심한 그녀는 결국 불확실한 미래보다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택하고 말죠. 아마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는 큰 행복도, 큰 불행도 없을 겁니다. 늘 작은 행복, 작은 불행만 택할테니깐요. 현재가 아무리 행복할지라도 그녀는 미래에 그 행복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라는 불안감에 초점을 맞추며 살고 있습니다. 현재의 행복 따윈 안중에도 없는 거죠.
프랑수아 사강은 마약 복용 혐의로 법정에서 한 말이 인상이 깊었습니다. 워낙 프랑스를 대변하는 작가이기에 대통령 마저 나서서 그녀를 옹호하지만 그때 그녀가 한 말이 있었죠. '지랄들 하지 마시라, 뭔데 나를 옹호하느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그녀는 굉장히 당돌하고 떳떳한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바스락에서 독서모임을 하면서도 제가 가장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이 바로 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기도 했습니다.
감정, Emotion이라는 말의 어원.
Emotion은 Emotere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예전에 대륙이 하나였다가 땅이 움직이면서 여러 개의 대륙이 갈라지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본딴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움직이다'라는 말을 담고 있죠.
감정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등장하는 '슬픔'은 처음에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감정이었다가 나중에 고통스러워 할 때 제 역할을 하죠. 이렇듯 우리에게 쓸모 없는 감정은 없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감정을 읽어야만 할 겁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 책에서는 여인숙이라는 시가 등장합니다.
바로 이 감정수업이라는 책과 아주 잘 맞는 시이기도 합니다.
어떤 감정이든 감사하게 여기라.
당장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감정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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