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책을 엄청 구입했었다. 보통 내가 책을 구입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총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그 책을 정말 읽고 싶은 경우다.
평소에 좋아했던 故장영희 교수, 김연수 작가, 강신주 박사의 책들이 그렇다. 이 부류에 속하는 작가들은 보통 신간을 내놓기 전에도 늘 언론매체나 출판사 블로그를 통해 출간되는 책들이 있는지 확인한다. 모든 책을 구입하진 않지만 다른 작가들보다는 높은 비율로 내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 이 경우엔 구입과 동시에 바로 소비하므로 가장 이상적인 경우에 속한다.
두번째는 책의 내용이 궁금한 경우다.
영화나 드라마 덕분에 갑자기 인기가 많아진 원작 소설, 사람들 입방아에 자주 오르는 고전 소설 그리고 서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 베스트셀러 등이 그렇다. 이 경우는 오히려 첫번째 경우보다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반면에 오래가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구입에 있어서는 적극적이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읽히지 않고 있다. 원작 소설들은 영상 매체를 접했을 때의 그 감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구입했지만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 책으로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모를까.) 그리고 고전 소설 같은 경우는 정말 읽어보고 싶기도 하고 책의 내용도 궁금하다. 하지만 잘 읽히지 않는 이유는 내용이 어렵다. <백년동안의 고독>처럼 등장인물들부터 헷갈리는 경우가 있고 고전 소설은 주로 외국 소설이 주를 이루다보니 내 정서상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나마 요즘 조금 관심 있는 고전 소설은 <동물 농장>과 <노인과 바다> 정도인데 짧은 분량임에도 이마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지막으로 베스트셀러는 솔직히 말하면 '왜 인기가 많을까?'라는 호기심이 100%다. 원작 소설이나 고전 소설보다는 읽히는 비율이 확실히 높긴 하지만 나중에 다시 읽으려고 하면 왜 이 책을 구입했을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드는 편이기도 하다.
마지막 세번째는 마음이 허할 때마다 그 부족함을 채워 넣기 위해 구입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군주론, 상처를 많이 받았으면 심리학,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자기계발서 등이 그렇다. 허한 마음을 책으로 메우려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왜 나는 눈치를 보는가>, <프로이트의 의자>처럼 가득 채워주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마음이 허한 경우는 거의 순간적인 상황일 뿐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다. 굳이 채우지 않아도 시간이 가장 좋은 약임에도 그것을 참지 못하고 책으로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다만 이 경우는 다시 느낄 확률이 높으므로 책을 다시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 두통이 심하면 진통제, 열이 심하면 해열제를 찾는 것처럼 하나의 약과 같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너무 어려운 내용의 책들은 장식용이다. <군주론>과 <노자 도덕경>이 그렇다.
방이 더럽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사람은 청소를 시작한다. 하지만 책은 쌓으면 좋다는 이상한 고정관념 때문에 책을 정리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나도 그런 경우다. 그렇게 책을 쌓기만 하다가 작년에 알라딘에 읽지 않는 책들을 모조리 팔았었다. '언젠가 한 번 읽지 않을까?', '에게, 겨우 이 금액밖에 안줘?' 라는 생각 때문에 판매를 망설이기도 했지만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영원히 정리하지 못한다. 라는 생각으로 팔아넘겼다. 약 30~40권을 팔아서 얼마 안되는 지폐 몇 장을 손에 쥐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팔려던 책들이 참 필요했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 팔았던 책을 떠올려보면 무슨 책을 팔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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