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오네모

글 작성자: Yongma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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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배수가 불량한 광물질 토양과 우세한 초본식물이 특징인 습한 생태계 환경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굳이 환경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습지를 떠올리면 불쾌하고 텁텁한 느낌마저 든다.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런 습지와 같은 공간이 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는 '습지'와 같은 반지하 단칸 자취방이 그렇다.  습지생태보고서는 요즘 네이버 웹툰에서 <송곳>이라는 작품으로 독자들과 조우하고 있는 최규석 작가의 작품이다. 책으로 찾아볼까하다가 마침 KBS 드라마 스페셜에서 단막극으로 제작된 게 있어서 그의 작품을 영상으로 들여다봤다.  




1. 하위종


생태계에서는 필연적으로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먹고 먹히는 치열한 우리들의 세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우측에 앉아있는 반듯한 청년이 작가의 이름을 본따 극중 '최규석'이라 불리우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지방사립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와 그 친구들은 '얘는 70점, 쟤는 60점'  지나가는 여대생들을 점수로 매기면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앞 두 친구가 옥신각신 점수를 매기는 사이에 주인공 눈에 띄는 여대생 한 명이 지나간다. 저만치 흐릿한 실루엣에서도 그의 시선은 그녀에 향해져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있던 그는 외친다. '100점'




그저 하위종들끼리 모여서 농담따먹기식의 이런 장난에 주인공은 '결핍마저 개그로 승화하는 뻔뻔함이 있어야 인생이 쉬워진다' 라고 말한다.  


 

이미 라면은 청춘의 상징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오늘 식사도, 아니 우리의 식사는 계속 라면이다.




만화학과 학생인 주인공의 책상, 악어에게 쫓기는 듯한 개구리의 모습은 드라마 곳곳에서 계속해서 등장한다.




개강을 몇 주 앞두고 주인공의 친구는 이번학기 등록금을 확인한다.  정부에서 반값등록금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반값은 아니어도 전년대비 70%정도의 등록금이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고 등록금을 확인하지만 반값은 커녕 3%정도 인하하는 선에서 그쳤다.  오히려 그 영향으로 수업일수마저 줄었다. 수백억을 쌓아놓고 있는 부르주아 재단을 탓해보기도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늘 손해보는건 '을'에 위치한 학생들이다.



라면이 다 끓고 잡지 위에 올리려고하자, 친구는 기겁한다.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주는 잡지에 그러면 못 쓴다고.  그러면서 평소에 라면받침으로 쓴 거 같은 다른 책을 집어들어 그 잡지와 역할을 교체한다.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문구가 무색하게 라면받침이 된지 오래다.  저런 이야기는 책 안에서만 존재하지. 여전히 현실은 시궁창이다.




2. 자존심은 개나 주라고 해


주인공 최규석은 매 학기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수재이지만, 저번 학기에는 쪼달리는 생활비 탓에 아르바이트를 늘렸더니 기대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생전 찾아가지도 않았던, 앞으로도  찾아갈 일 없었을 거 같았던 '온성최씨종친회' 협회에 찾아가서 장학금을 구걸하러 간다.

 



이사장은 주인공의 심기를 계속 거슬리게 한다. 그냥 장학금만 주면 되는데, 과는 무엇인지, 아르바이트는 무엇을 하는지

주인공에 대해 끊임없이 호구조사를 한다.


이사장 : 고등학교 성적도 좋고, 대학교 성적도 좋은데. 이번학기 성적이 좀 그렇네. 연애라도 했나보지?

최규석 : 그게 아니라요. 아르바이트가 많아져서 공부할 시간이 줄어서요. 장학금 혜택도 많이 줄었고...

이사장 : 장학금 혜택이 줄었어도 1등은 장학금 줄 거 아니야? 1등 해야지 1등, 2등은 기억 못하는 세상이야.

 

그래서 수능시험이 끝난 후에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죽고, 우리들 기억 속에 잊혀졌나보다.





자존심이 돈을 벌어주는 것이 아니기에, 그냥 장학금만 받자는 생각에할 말은 많지만, 자존심을 꾹꾹 참아가며 장학금을 위해 주인공은 그저 묵묵히 듣는다.  그리고 아까 책상 위에서 악어에게 쫓기던 개구리가 등장한다. 그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물론 상상속에서는 버럭 화도 내본다.




3. 이종과의 조우시 행동양식


그가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 곳은 단란주점. 




마침 신입이 왔는데 하필 외국인이다.  대학생이지만 캔..유..스피킹..잉글리쉬?? 한 마디도 겨우 건넬까 말까.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간건지, 그저 학위가 필요한건지 대학교란 곳은 참으로 애매한 곳이다.



그러자 외국인은 한국말 잘한다며 한국말로 하라고 한다. (불법 노동자 같지만 교환학생이다.)




힘겨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가려던 참에 친구를 만난다.



바로 알바라곤 해보지도 않았을 거 같은 부잣집친구,  옆에 여자도 태우고 차를 몰던 그 친구는 막 단란주점에서 퇴근한 주인공에게 여기서 뭐하냐고 묻는다.  여기서 아르바이트 한다고 하기엔 창피하고 다른 핑계대면서 숨기기 급급하다. 


대학생이 왜 이런 단란주점에서 일해야하는지, 기성세대가 부끄러워야 할 판에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대학생이 부끄러운 처지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그리고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간다. 그저 생활하는 자체도 버거운 자신의 모습과 달리 돈이면 돈, 여자면 여자, 누릴 거 다 누리는 친구의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4. 시련은 부자에게 가지 않아


초등학생들과 오락게임을 하고 있는 한 청년이 등장한다.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 초딩과



그런 초딩을 제압하는 주인공의 친구.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 했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친구다.



오락게임뿐만 아니라 당구장도 제압하고



동네에 있는 게임기 안에 든 랍스타도 싹 쓸어가버리니, 그 주인아주머니는 몰래 5천원을 건네며 그만 하라고 한다. 그가 얼마나 게임,당구 등에 빠져있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돈은 없고,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였을까.



그리고 안 그래도 셋이 지내기에 비좁았던 단칸방에 그 친구마저 들어온다.




5. 호박에 줄





월세, 생활비, 등록금도 다 부담하기 버거운 상황에서 쓰레기 봉투 값도 아까운 그들은 쓰레기도 학교 쓰레기통에 버린지 오래다.



물도 역시 학교 정수기를 이용한다.



6. 의태 (어떤 모양이나 동작을 흉내내어 그와 비슷하게 꾸미거나 만듦)


아까 등장했던 부자친구는 원래 소개팅 나가기로 했던 친구의 펑크로 주인공에게 소개팅좀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등록금 내랴, 입에 풀칠하랴, 사느라 바빠 연애하는 데 관심없었던 주인공은 그 제안에 부정적이었다.  부잣집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가기전에 약 몇 주정도 계약이 남은 오피스텔에서 주인공에게 머물러도 된다는 제안과 함께 소개팅에 입고 갈 양복을 제공하자 주인공은 하는 수없이 그 제안을 덥석 물었다. 





7. 연애가 죄냐


연애가 죄는 아니지만, 주인공에겐 여전히 사치다.





하지만 소개팅에서 만났던 그녀가 꽤나 맘에 든다. 




하지만 그녀와 데이트를 하면 할수록 통장에 남은 잔액은 점점 줄어간다. 


옷을 사고 청소카트 아르바이트를 상상하는 주인공

 

그리고 계속 그 주변에서 알바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달 알바비로도 버거운 금액. 하지만 싫은 내색을 부리진 못한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런치타임 피켓 아르바이트를 상상하는 주인공


밥 먹으러 가는 길에도 마찬가지.


영화 티켓을 발급 받고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상상하는 주인공


영화를 볼때도 그는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상상하고 있다.



그가 행복하면 할수록 시궁창 같은 현실은 점점 더 빨리 다가오고 있다. 



갑작스럽게 키스하는 그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은 어김없이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졸업하고 취직한 대학선배와의 술자리.


세상이 이렇게 된 건 너희들이 분노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니 계속 착취당하는거 아니냐. 

투쟁해서 얻어내라.


선배는 이렇게 말하지만 그가 대학생일 때도 똑같은 상황이었다. 오히려 퇴근 후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급히 회사로 다시 달려간다. 취업하면 좀 더 나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더 악화되면 악화됐지. 좋아지지 않는다.






점점 등록금 납부 기간은 다가오는데 전에 '온성최씨종친회' 협회에서 신청했던 장학금 소식은 감감 무소식이다. 고모에게 다시 물어보지만 좀 더 기다려보라는 이야기만 들려온다.  그저 종친회만 믿기에는 너무나 불안하다.




회사로 부리나케 달려간 선배를 뒤로하고 동기끼리의 술자리.  그 중 한 친구가 말한다.

"너희들 나중에 잘되면 자랑도 해, 그러니까 무조건 잘되라"

그 말 속에 숨겨진 씁쓸함에 하염없이 쓰디쓴 소주를 삼킨다.  





8. 습지생태 보고서



소개팅을 마치고 다시 친구에게 정장을 반납하 친구의 오피스텔에 간다.

잘 입었다는 인사와 함께, 내가 여러번 입었는데 어디 찢어진 곳 없는지 확인해보라고 말하지만 친구는 '괜찮아 산지 오래되서 어차피 버릴 옷이었어.'라고 쿨하게 말한다. 상위종들은 그냥 원래 쿨한가보다.

 



주인공은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부족한 생활비에 다시 은행에 대출 받으러간다. 은행원은 이렇게 여러 번 대출 받으면 이율도 손해라고 대출횟수를 줄이라고 제안해보지만, "저도 받고 싶어서 받는 거 아니에요.."라고 씁쓸하게 말한다.  그리고 은행원은 결과는 언제쯤 나오냐는 질문에 추후에 문자로 통보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대출 실패. 신용불량자도 머지 않았다.



이제 이런 상황은 무덤덤해진지 오래다.





오랜만에 데이트,  그녀는 어떤 남자의 차에서 내리면서 걸어온다.  심히 기분이 좋지 않은 주인공에게 그녀는 마침 옷색깔이 비슷하다고 커플룩 같다면서 통하는게 있다고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여전히 표정은 좋지않다. 전에 선물해줬던 그녀의 핸드폰 고리를 보니 바뀌어있기도 하고,  조금 있다가 그녀는 통화를 받으며 잠시 밖에 좀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다시 뜬다.

 



아까 그녀가 내린 차에 있던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스토커 같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자 그 남자를 떼어놓으려고 시도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표정은 정색.




이런 상황을 보고 그냥 뒤돌아서버리는 그녀. 뒤늦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해보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들과 똑같다며 단호하게 떠나간다. 



역시 연애도 사치였고 나에겐 죄였다.



좌절감을 느끼는 주인공. 살려고 아둥바둥 발악하면 할수록 늪지에 있는것 마냥 삶은 점점 고달파진다.




안그래도 심난한 상황에서 비오는 날 반지하 단칸방은 물까지 뚝뚝 샌다. 뒤이어 집주인이 등장하고 3층에 방 비어있으니 그리로 옮기라고 한다.  '단, 거기는 지금보다 월세 20만원 더 줘야해'라는 뻔뻔한 집주인의  말에 화가 나버린 주인공


물 새는게 우리 잘못이에요?,  손해보는 거 양보하는게 그렇게 어려워요?  

우리는 감정 없는 줄 알아요? 눈치보고 사과하고 고마워하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처한 상황이 너무 암담한 주인공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무덤덤하게 알았다며 전화를 받고는 끊자 친구들은 무슨 전화냐며 묻는다.


'종친회에서 장학금 준대,  다음학기 학교 계속 다닐 수 있어..' 

 

분명 기분 좋은 소식인데 주인공은 하염없이 운다.

또한 결국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




9. 우리 어디만큼 와 있을까.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그나마 친구가 유학갈 때 몇 주정도 계약이 남은 오피스텔에서 머물기로 한다.




최신식 시설에 마냥 신기해 하던 그들.




결국 그 기간마저 끝나고 또 다시 어디론가 이동한다. 



걷고, 버스타고, 또 다시 걸으면서 주인공의 독백은 이어진다.



닳고 닳은 세상에서 벗어날려는 노력이 도망이 아니라 선택일 순 없는걸까

패배할 것이 두려워서 출발선에 서려는 것을 피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어른이 되는 날을 자꾸만 미루고 있는걸까.




한때는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노라. 자유와 기억을 만들고 있는 걸 보니까. 



세상안으로 성큼 들어서지도, 발을 빼지도 못한 채 두려움을 떨고 있는 지금 그래도 조금씩 잘하고 있는 걸까.  




자기 안의 수많은 모순과 세상의 두려움을 한가득 품고도.



영문도 모른채 터져나오는 기분 좋은 외침이 단지, 단지 어리석음 때문만이 아니기를.



언제고 자랑스게 사람들에게 이 때의 추억을 얘기할 수 있기를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등교길은 조금 멀어졌지만 다시 힘을 낸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P.S


계속 연재중인 <송곳>도 그렇고 <울기는 좀 애매한>,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등등 그의 작품은 처절하다 못해 가슴이 아려온다. 한창 젊고 건강한 나이의 '청춘들'의 모습이 마냥 행복만 모습만이 아님을, 오히려 어떤 나이대보다 처절하고 짓물이 나는  나이대임을.  어떤 기성세대의 한 어른이 그랬다. 그래도 젊은 게 좋다고. 젊으면 희망이라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희망은 젊은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다. 갓 태어난 아기부터 임종을 앞둔 노인까지 누구든지 희망을 꿈꿀 수 있다. 그저 사람에 따라 현실에 순응하느냐 꿈을 여전히 가슴 속에 간직하느냐에 따른 차이만 있을 뿐 결코 젊어서 희망이 있다는 말은 옳지 않다.


습지생태보고서 책을 볼까하다가, 마침 단편극 드라마가 있길래 찾아봤는데 대만족. 

우리 20대의 모습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70% 이상은 담아내고 있다. 어쩜 이렇게 디테일한 모습까지 담아냈는지.

무엇보다 드라마 중간중간 주인공의 독백이 참 슬프게 다가오고 이 드라마 내에 내재된 모습들이야 말로 우리 청춘들의 현실에 대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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