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오네모

글 작성자: Yongma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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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읽고, 3시간 쓰다.


 단숨에 책을 해치우고 그동안 수많은 '상대'와 나누었던 이야기(혹은 수다)를 곰곰이 생각했다. 경청을 한 경험이 얼마나 될까?  난 늘 말이 앞서는 성격이었다. 스스로 내향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내향적이라고 표현하면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전혀 아닌 거 같은데?라는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사실 나도 내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그 둘이 골고루 섞여있는지 아직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성향과 상관없이 분명한 건 '말'을 좋아한다는 것, 28년동안 살아오면서 늘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글'을 쓰는 것은 조금 뒤늦게 좋아했다.

 말을 좋아한다는 건, 곧 말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늘 하고 싶은 말이 끊이지 않아 한정된 시간 내에 수많은 단어들을 뱉고 나면 집에 가는 길에 오늘 쏟아낸 말들을 하나둘씩 복기해보면서 늘 후회가 뒤따랐다.

'그 말은 하지 말걸, 왜 그 말까지 꺼냈을까'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말은 곧 다시 말로 이어져서, 상대가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그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그 생각에 집중하다보면 상대의 말은 자연스럽게 반대편 귀로 흘러나간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무슨 중요한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상대의 이야기까지 듣지 않고 말을 내뱉고 싶었던걸까. 하나씩 과거의 기억 속에서 떠올려봤다. 즉흥적인 생각을 말로 뱉었을 땐 그 무게가 가볍고 휘발성이 강하다. 금방 소멸된다.  


회사 또는 상사를 향한 뒷담화.

정답이 없는 고민.

걱정 아닌 걱정.

자랑을 빙자한 자책성 발언.


부끄러웠다.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주제들인데도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걸까. 


편견의 감옥이 높고 넓을수록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상대의 생각을 교정하려 든다. 

이미 정해져있는 사실과 진실을 본인이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의 입장과 감정은 편견의 감옥 바깥쪽에 있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남들에게 내가 가진 생각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덩달아 말하는 것도 좋아하게 됐는지 모른다. 그 의도는 참 좋으나 가끔 엇나갈 때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내가 좋으면 남들도 좋다'라는 생각이 늘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1. 처음 바인더를 썼을 때 그 시스템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도 썼으면 하는 바람.

2. 책을 읽으면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는데, 아직 많은 책을 읽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


 저자의 성공담이 담긴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면 나도 성공한 것 마냥 들뜰 때가 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책을 덮으면 그 기분은 금방 소멸된다. 그 저자에게 책에서 쓴 내용들은 인생의 '하이라이트'와 같다. 본인 인생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모두 담아내기에는 분량의 한계가 있다. 어떤 작품을 읽거나 볼 때도 하이라이트는 굉장히 중요하고 시선을 끌만한 요소지만 딱 그 뿐이다. 결국 그 하이라이트를 돋보이게 해주는 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책을 읽고 바인더를 써서 만족감을 얻게된 건 그동안 쌓아온 노력과 흥미의 산물이다. 다른 사람에게 잠시나마 그 흥미를 제공해줄 수 있지만 만족감이라는 '하이라이트'와 같은 정상까지 단박에 데려다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늘 망각하고 나처럼 남들도 정상까지 금방 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타인을 내 의지대로 바꾸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서 말한 바람들에는 늘 다른 사람들을 바꾸려하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그렇다보니 내 좋은 의도만큼이나 상대가 바뀌지 않을 때 느끼는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이기적인 나만의 편견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 책을 읽고 편견이라는 두 글자를 다시 곱씹어봤다. 

"나에게 유용한 것이 꼭 타인에게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었다."



언어의 무늬와 결을 다채롭게 사용한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을 충실히 견디고 있음을, 

더 나아가 지금 이 순간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지 모른다. 


#1

바스락 모임에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각자의 사연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모습을 자아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가끔 보면 말을 정말 '예쁘게 한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 그때마다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구나', '그동안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봤구나' 등등. 그 예쁜 말들은 과거의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낯선 사람과 말을 섞고 관계를 맺는 단계에서 우리는 매번 스몰 토크라는 징검다리를 놓아야한다. 

달리 말해 스몰토크는 모든 인간관계에 시작이다. 


#2

스몰 토크는 더불어 살아가면서 일상의 흔한 소재나 화젯거리를 주제로 이야기 하는 것을 뜻한다. 늘 일상적인 소재는 너무 뻔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무시하면서 살았지 않나 싶다. 정보성이 아닌 일상적인 대화가 상대에게 필요할까?라는 생각을 자기 검열을 거치다 보면 내 기준으로 늘 상대에게 득이되는 이야기만 대화의 소재로 끄집어냈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잠깐의 화제는 될 수 있으나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연결성이 떨어졌다. '나만 아는 이야기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비슷한 듯 다른 삶을 살아간다. 많은 부분이 겹치며 살아가는 거 같으면서 돌아보면 하나도 겹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 누구나 뻔하다고 느끼는 일상적인 소재가 '나'와 '타인'을 연결해줄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빅 토크는 잠깐 내려놓고, 8월은 스몰 토크에 초점을 맞춰 살아보자.


지는 법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지는 행위는 소멸도 끝이 아니다. 

의미있게 패배한다면 그건 곧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3.

어제 독서모임 발제자였던 Daisy님이 그랬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누가 잘못했는지 상관 없이 늘 화해하는 쪽이 남편이었다고. 처음에는 이겼다는 기분에 좋았다가, 어느 순간 잘못과 상관없이 늘 먼저 사과를 했던 남편이 너무 멋져보였다고.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 중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책이 있다. 작가는 제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 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살면서 지지 않아도 되지만, 꼭 이길 필요도 없다.


평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각자의 마음 속에 저마다 다른 풍경의 비밀정원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곳에는 타인이 잘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추억과 상처, 이루지 못한 꿈이 처연하고 은밀하게 어우러져 있을 것만 같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 정원을 살짝 엿보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 동네 어귀 한 귀퉁이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빼꼼히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질문이라는 까치발을 들어보면 어떨까. 어차피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세상 살이의 근본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4.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향기가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비밀정원을 까치발로 굳이 빼꼼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향기는 정원 밖까지 향기를 머금은 채 고스란히 퍼져온다. 그 향기는 이 곳 저 곳에 전달되어 그 사람의 정원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모여 있다. 사람은 말과 글과 행동과 눈빛을 통해 인향을 내뿜는다고 이기주 작가는 설명한다.

말, 글, 행동, 눈빛.

이 네 가지 단어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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