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처음 성남에 온 이후로 줄곧 모란에서 살다가 이매로 이사온지 벌써 4달이 지났다. 이매, 바로 옆에 위치한 야탑과 서현은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지만 4달간 지내본 이매는 그와 달리 참 조용한 동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조용한 동네로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보였던 건 성남 아트센터였다. 인천에 살 때부터 트위터를 통해 이재명 성남시장의 글들을 종종 볼때면 성남아트센터가 언급되곤 했었다. 아트센터가 그냥 시의 하나 예술관이겠거니 생각했던 것과 달리 꽤나 유명한 작품들이 연간 스케줄에 즐비해있었고 작품 수준 또한 뛰어났다. 그래서일까. 이사도 왔으니 나중에 괜찮은 공연이나 전시전이 있으면 한 번 가봐야겠다! 라고 다짐했었는데 그게 오늘 이루어졌다!
이재효 조각전
물론 4달간 성남아트센터가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가끔씩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괜찮은 작품이 없나 살펴보곤 했는데 그렇게 끌릴만한 작품이 없었다. 그러다! "Walking with Nature"라는 주제로 이재효 조각전이 열리는 거 보고 급 관심.ㅋㅋㅋㅋ
그래서 이매역에서 내린 후, 집에 가기 전에 잠깐 성남아트센터에 들렀다. 저 멀리 이재효 조각전이 보인다.
작가와의 만남, 이재효 조각가.
바스락 모임이 끝나고, 식사를 하고 전시전 티켓팅을 하니 얼추 3시가 됐다. 사실 오늘 성남아트센터를 방문하게 된 건 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날 이 시간에 작가님 오심.ㅋㅋㅋㅋ
5월부터 7월까지 2달간의 전시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할 수 있는 날이 몇 번 되지 않는데 그 중 하루가 오늘이었음.ㅋㅋㅋㅋ
그냥 담배 많이 피는 동네아저씨처럼 생긴 이 아저씨가 이 전시회의 주인공, 조각가 이재효씨다.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마이크 잡는게 익숙하지 않다며 처음에는 마이크를 내려놓고 그냥 육성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초등학생 애들이 안 들린다고 해서 다시 마이크 잡으심.ㅋㅋㅋㅋ
원래는 작품 좀 둘러보고 작가와의 만남을 해야 좀 더 이해가 높을텐데, 도착하자마자 시작해서 일단 이야기부터 들었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작업장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분당까지 달려왔다면서, 자신은 따로 준비한 거 없으니 마음대로 질문하면 대답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시작했다.
Q1. 어떻게 작가가 되셨어요?
중학생 때까지는 예술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체육이 가장 싫고 미술이 가장 좋아서 고등학교 진학 후 취미로 미술관을 등록했는데 알고보니 그 곳이 취미활동을 위한 곳이 아니라 대학 입시를 위한 반이었다. 본의 아니게(?) 그 영향으로 홍익대 조소과에 진학하게 되고 계속 하다보니 부쩍 관심이 생겨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Q2. 15년간 무명 생활에서 온 생계고는 없었는지?
"젊을 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저처럼 몇 십년간 힘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저희 같은 직업이 정년 퇴직이 없어서 좋다. 그리고 생계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그냥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지했고 버티다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다. "
Q3. 부모님의 잔소리는 없었는지?
나에게는 부모님이 따로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도 대학생 자식을 둔 부모로써 자식에게 잔소리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작아지는 거 같다. 내버려두는 게 맞다고 본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노는 애들이 잘 될지, 공부 잘하는 애들이 잘 될지는.
Q4.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나는 작품을 자식에 비유한다. 누군가 부모에게 어떤 자식이 가장 좋냐고 하면 그 질문에 대답하나? 안 한다. 나도 그렇다. 하나만 뽑을 수는 없다.
Q5. 멘토 있으세요?
없다. 작가는 결코 멘토가 있으면 안 된다. 있으면 결국 그 사람 작품이나 가치관을 모방하기 마련이다.
Q6. 작품을 보면 굉장히 통찰력이 뛰어나신 것 같은데, 선천적 능력인지 후천적 능력인지?
당연히 선천적 능력이다. 나는 사물을 파악하는 능력이 타고 났다. 이런 능력은 후천적으로 연습해서 따라할 수는 있으나 잘할 수는 없다.
Q7.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세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기와 공장을 하셨는데 덕분에 그 주변에서 흙을 만지면서 놀았다. 손이 제 2의 뇌라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에 만지고 놀았던 경험들이 지금의 감수성을 만들었다. 10살 이전에 느꼈던 감수성이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초등학교 다닐 때는 생각없이 놀아야 한다는 주의다. 그때 얻은 그런 감수성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그때 그때 눈에 띄는 것을 작품화하고 있다. 미리 계획하고 개요를 짜고 그런 건 하고 싶어도 못한다.
Q8. 힘든 적 있으셨나요? 슬럼프라던가.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나같은 작가든 슬럼프 없는 사람은 없다. 보통 실력을 쌓을 때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그리지 않는다. 계단식처럼 어느정도까지는 실력이 쌓이다가 정체되는 구간이 있는데 그 구간이 바로 슬럼프다. 그 슬럼프가 곧 기회일 수도 있다. 그 구간만 벗어나면 굉장히 성장하는 느낌을 받는다. 오히려 슬럼프가 왔다고 절망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하니 예전에 비해 부쩍 성장한 거 같다.
그 외에도 1시간동안 굉장히 많은 질문들이 오고 갔다. 그렇게 작가와의 만남을 하고나서 제대로 작품을 구경했다.
작품은 아트센터 내에 여러 군데에 전시되어 있었다. 먼저 작가와의 만남을 했던 갤러리808에는 드로잉과 같은 간단하면서 작은 작품들이 있었고, 바로 그 옆 방에는 좀 더 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큐브 미술관에는 그 보다 큰 작품들이 있었고 옥외 공간에도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가와의 만남때도 일상 속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작품화시켜놓으니 한결 보기 편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했던 관객이 있었다.
정말 그 말처럼 자주 보는 연필이 이렇게 작품이 되어 있었다. 작가는 이런 작품들을 "가지고 놀다보니 작품이 됐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님은 유난히 원 모양을 좋아하시는 거 같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원형 모양이다!
그리고 작품을 볼 때마다 저 밑에 비슷한 숫자가 쓰여 있어서 뭔가 싶었는데 작가님의 이름을 숫자화시킨 거라고 한다.
이 = 01
재 = 21-1
효 = 110=1
그 뒤에 숫자는 날짜라던가 작품 번호등을 표시해둔 거라고 한다. 정말 남다른 발상을 가지고 있는 듯.ㅋㅋㅋㅋ
다양한 사람들.
이 작품은 미국에 있었을 때, 어떤 외국인이 책 한 권 주면서 이것도 작품으로 만들 수 있냐고 해서 그 자리에서 만든 거라고 한다.
이 날 인기 많았던 작품 중 하나. 작가는 이런 작품을 두고 관객들이 "이런 건 나도 해볼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라고 일컬었다. (하다가 모르겠으면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작업장에 오면 알려준다고.ㅋㅋㅋ)
일상 속의 재발견.
쇠로 이렇게 동물을 만든 작품도 있다.
고물상에서 쇠뭉치를 찾을 때가 가장 기쁘다고 한다.
이 악어는 처음에 몸통밖에 없었는데, 몇년간 계속 업데이트 하면서 다리가 생기고 머리가 생기고 꼬리가 생겼다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존 작품에 덧붙이고 싶다고 이야기하셨다.
옆 방으로 가면서 "작은 작품들밖에 안하시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든 찰나, 눈에 띈 작품.
처음 보자마자 와! 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멀리서 볼 땐 나뭇잎인가? 싶었는데 가까이서보니 쇠를 구부려서 만든 작품이었다.
그 옆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두 가지 스타일의 작품이 있었는데 역시 멀리서 볼 땐 일본 도자기 같은 걸 이어서 붙이신건가? 싶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화투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작품은 집 벽에 달아놓고 싶다.
이건 작품을 만들 때 사용했던 공구들로 만든 작품. 정말 다양한 도구들이 있다.
그 뒤에는 어디선가 많이 본 작품!
돌을 엮어서 만든 작품이었다.
실과 돌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랍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방금까지 봤던 건 갤러리808이었고, 큐브 미술관에도 또 다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나가는 길 곳곳에도 이렇게 이재효 조각가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옥외에 전시된 나무로 만든 작품들은 세계 각지에서 전시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외국 사람들이 이 작가님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큐브 미술관 들어가는 입구, 뭔가 하고 자세히 살펴봤더니 나뭇잎.ㅋㅋㅋㅋㅋ
왼쪽으로는 돌, 오른쪽에는 나뭇잎들로 엮은 벽에서 산 속에서 풍길만한 냄새들이 코로 스며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왼쪽 한 편에 있는 작품.
이 작품도 보자마자 "와!!!!!!!!!!!!!!!"
아무리 봐도 난 돌과 실로 만든 작품을 겁나 좋아하는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까이서 보면 정말 단순하게 돌을 실에 엮어놓은 건데, 굉장히 아름다웠다.
작가님 트레이드 마크.
노래방에서 본 것 같… 아니 우리나라든, 세계 각지 호텔에서 한번씩은 봤던 작품! 딴 곳에서 이 작품을 봤던 사람들이 그냥 시중에서 파는 거 호텔이 구입해서 전시해놓은 줄 알았는데, 이 전시회 보고나서 이재효 조각가님 작품인 거 처음 알았다고. ㅋㅋㅋ
역시 내가 굉장히 꽂힌 작품. 그냥 쇠로 이어서 만든 작품인데, 역시 조명빨인가.
오랜만에 정말! 상당히 괜찮은 전시회를 봤다. 처음 가본 성남아트센터도 생각보다 좋았다. 이곳에서 오늘 봤던 전시회나, 콘서트나 오페라와 같은 공연들이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맨날 문화활동한답시고 영화만 보러 다녔는데 이렇게 가끔씩 전시회에 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작가님의 작업장이 있는 경기도 양평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 (안 그래도 인터넷에 작가님을 검색해보니까 나 같은 생각이 든 사람이 많았나보다. ㅋㅋㅋ 전시회를 보고 다녀온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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