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싫다. 그렇다고 서울을 벗어난 곳에서 사는 건 더 싫다. 이게 무슨 말일까 싶지만 아마 이 글을 읽는 서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거다.
서울은 표정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표정이 없다. 왜 표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래야만 편하게 잊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하나하나 느끼고 살기엔 너무 빨리 지나가고 모든 걸 보고 지나가기엔 나만 뒤처져 있다.
도시의 속도가 버거울 땐 자연을 떠올린다. 유유자적 서핑을 타는 양양, 언제든 반갑게 맞아주는 제주.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을 때 다녀왔던 곳의 추억을 떠올리고 아직 가보지 못해 지도에 저장해 둔 지역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면 잠시나마 버거운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빠른 걸음을 더 빠르게 도와주는 무빙워크는 서울과 닮았다.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시나요라는 질문이 채 닿기도 전에 발걸음은 저 멀리 사라져 있다.
리틀 포레스트, 박하경 여행기가 도시 특유의 빠름에 지친 현대인에게 위로가 되는 까닭은 떠나지 못하는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 영화 속, 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일상의 속성을 온전히 내려두고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빠른 게 싫다고 떠난 곳에서 빠르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편함을 느끼며 다시 빠름을 찾고 있지는 않을까?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고 돈만 있으면 어떤 것도 자동으로 해결되는 곳에 있다가 내가 신경 써야만 모든 것이 나아가고 나아지는 도시 밖의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을 잘 헤아려보면 도시의 빠른 편리함 위에 시골의 느린 편안함을 얻고 싶은 거지. 시골의 불편함 위에 편안함을 가지고 싶은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살고 싶지만 서울에만 있고 싶지 않다.
빠른 마음으로 일을 처리할 때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서울에 있고 싶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면 서울이 아닌 곳에 있고 싶다. 빠르게 채워진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하나하나 느끼고 모든 걸 보면서 천천히 채워가며 내 속에 나 자신을 가득 채웠을 때 나는 또다시 서울을 떠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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