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일기를 쓸까 하다가 오늘은 일기가 아닌 사색, 또는 평소에 느꼈던 감정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아니 싶어졌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사람이 만나면 언제나 헤어지는 것처럼, 헤어지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
졸업을 한지 어엿 8개월이 지났다. 어디로부터 벗어난 것만 같은 '해방감'과 이제 어느 소속도 아닌 '허탈감'이 뒤섞여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 안에서 시간은 자꾸 흘러갔고 몇몇 친구들을 제외한 많은 친구들과 정리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사람은 늘 혼자면서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다. 잠시 누가 옆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영원히 나와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계속 같이 있을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그 안도감은 '영원히' 같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나서 부터 와장창 흔들리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구조상 어디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차를 마시고, 혼자 여행을 가든 많은 사람들의 눈초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 눈초리에 들어온 이상 혼자는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결점이 있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면그런 인식이 싫은 나머지 자신의 존재를 '자아'가 아닌 '다수' 속에 숨어버린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방관자가 된다. 방관자는 다수와 함께 있으면 안도감을 느끼지만, 홀로 서있을 땐 의지할 사람이 없어 무척 불안해 한다.
그래서 그들은 홀로 견뎌내야 하는 상황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삶의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수동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최악의 경우 평소엔 자신을 한없이 능동적인 사람이라 칭하지만, 막상 어떤 상황에 처해지면 수동적인 자신의 맨 얼굴을 보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느끼곤 한다. 사실 내가 그랬다. 방관자는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한없이 강하지만, 홀로 있을 땐 그 누구보다 한없이 외로움을 타고 결핍을 느낀다.
그 결핍은 오롯이 혼자 채워야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법인데 '홀로 서는 법'을 모른, 아니 두려운 나머지 결국 다른 사람들이라는 매개체로 그 공간을 채워넣곤 한다. 얼마 안돼서 그 공간은 금방 채워지지만 다시 금방 결핍을 느끼곤 한다. 마치 갈증을 느낄 때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면 굳이 소수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갈증은 금방 채워넣을 수 있다. 많은 이들 또한 그렇게 느끼기에. 하지만 그건 딱 대학까지. 그 이상은 더 이상 채워주지 않는다. 설사 자신이 목 마르다고 하더라도.
학생 때는 심심하면 아무 생각 없이 친구를 불러 한 잔 들이키며 시간들을 보냈겠지만 직장인이 되어 시간이 남았을 때 친구들 연락처 앞에서 굳이 이 시간을 그렇게 써야할까 망설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런 경우다. 시간은 뭐, 한없이 여유롭지만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롭지 않은 지금 친구들과 연락을 이어간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에는 다양한 관계들이 다음과 같이 존재한다.
1. 내가 몇번 연락을 하다가 이내 어색해지면서 관계가 사그라지는 타입.
2. 먼저 '사회인'이 되어 앞서간 친구에게 선뜻 연락하기 어려운 타입.
3. 이미 이전에 관계가 소멸되어 연락이 닿지 않는 타입.
이외에도 많겠지만 내가 먼저 연락을 하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는 주로 이런 경우다. 내가 몇번 연락을 하다가 이내 어색해지는 타입은 상대방 본인도 힘들게 느끼는 경우다. 아마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그대로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서로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기면 그땐 지금보다는 약간 회복된 관계가 되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먼저 사회인이 되어 앞서간 친구들. 사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친구는 그 사회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 나는 나 자체만으로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할지라도 자주 만나다보면 위로 그 이상의 대화가 되질 않는다. 1번과 같이 동등한 위치에 섰을 때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미 이전에 관계가 소멸된 친구. 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 이전에도 이미 서로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던 관계였거나 서로에게 맞지 않은 부분으로 틀어졌으니 연락이 닿지 않는 당연한 관계. 서로 다른 생각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고, 그 다름을 서로 인정하지 않는 한 관계를 좀처럼 회복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가장 어렵다고 본다.
이렇게 내가 어려움을 느끼는 관계들에 대해서는 이 고비를 뛰어 넘는다면 상대방보다 내 자신이 그들에게 좀 더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내게 지속적으로 다가와주는 친구들은 참 고맙다. 아직은 학생'인' 친구들. 졸업할 때 먼저 자리 잡으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소리 쳤지만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불안정한 나에게 가끔씩 먼저 연락해주면서 종종 만나곤 한다. 농담처럼 너한테 얻어먹을때까지 연락할거다라고 하지만, 알바 월급날이면 한턱 쏘고 언제 취업할거라고 재촉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고마움만 느낀다.
그리고 가장 고맙게 느끼는 직장인 친구. 작년 12월, 졸업을 앞두고 다른 친구보다 일찍 취업을 했고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꼬박꼬박 만나고 있다. 가끔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지만 그 어떤 친구들보다 강한 친구다. 그 친구가 내게 지속적으로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많이 멀어졌을 것 같다. 만날 때마다 말로는 자신이 먹고 싶다면서 비싼 음식을 고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무말 없이 계산을 마치고 또 다시 직장으로 향하곤 한다.
어쩌면 '비용'이라는 잣대로 친구들에 대해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을 때 그 친구만큼은 내게 그런 계산적인 모습 없이 관계 자체만으로도 끄떡없다는 우리 둘의 사이를 증명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 없다는 것을. 위태로웠던 촛불을 다시 피워준 그 고마운 친구들에게 나도 언젠가는 그들에게 다시 피워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든다.
'일상을 씁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인생의 흰자와 노른자 (2) | 2015.02.19 |
---|---|
구글 부사장 '우리는 모든 기록들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디지털 암흑시대에 살고 있다' (2) | 2015.02.16 |
중소기업중앙회 계약직 여직원 권씨의 안타까운 죽음 (4) | 2014.12.10 |
권리침해신고, 신고만으로 게시물 임시조치 정당한걸까? (3) | 2014.11.17 |
미생이 내게 알려준 것들. (0) | 2014.11.10 |
긍정과 부정 (0) | 2014.10.14 |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0) | 2014.10.09 |
진짜 내 사람을 만나는 법 (4) | 2014.09.27 |
인간성에 관한 것. (3) | 2014.09.23 |
그들이 '기레기'라고 불리는 이유. (8) | 2014.09.21 |